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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2.09 03:09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우리나라 인터넷·벤처 기업가 중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그가 1999년 창업한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23조4035억원(지난 6일 종가 기준)으로 전체 상장기업 6위다. 네이버보다 앞선 기업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현대모비스·SK하이닉스뿐이다. 네이버의 지분 4.64%를 가지고 있는 그도 1조800억원이 넘는 자산가가 됐다. 그러나 네이버와 이 의장의 성공 스토리는 올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네이버는 영세사업자들의 사업 영역을 침해한다는 거센 비판과 함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까지 받았다. 10년 이상 대외 활동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의장에게도 "장막 뒤에서 권한만 누린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공개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가입자 3억명 돌파 기념 행사장에서였다. 행사가 끝나고 며칠 지나 도쿄 시부야 중심가에 있는 고층 복합시설 '히카리에' 29층 라인의 집무실에서 이해진 의장을 만났다. 12년 만에 갖는 언론 인터뷰라고 했다. 그는 몇 번씩이나 "아직도 '이게 꿈이 아닐까, 깨고 나면 꿈인 걸 알고 다시 괴로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라인의 성공에 고무돼 있었다.
―라인은 어떻게 탄생했나.
"일본 검색 시장에 진출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본 사용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4~5년 그런 상황이 지속되니 직원들도 지쳐갔다. 그럴 때 2011년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공포스러웠다. 가족을 귀국시킨 직원들이 퇴근하면 집에 혼자 있는 게 두려우니 자연스레 회사에 남아 같이 밤을 보냈다. 그렇게 두려움 속에 밤을 새우며 만든 것이 라인이다. 라인에서 직원들의 마지막 절박감, 혼이 담긴 느낌을 받는다. 사업 성공도 그런 것 같다. 한 번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번의 시도에도 성과가 없다가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시도하는 것에서 찾아오는 것 같다."
―IT 분야에선 한때 각광받았던 기업과 서비스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거나 몰락한 경우가 많다. 위기감을 느끼진 않나.
"내가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가장 어려웠던 때가 언제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매년 어려웠고 위기였다. IT는 정말 재미있지만 힘들다. 1년 손 놓고 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닌텐도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다가 어느 순간 급전직하했다. 노키아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네이버도 지금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단계가 성공일까. 당장 내년, 후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 위기감 때문인가. 직원들에게 '회사를 조기축구회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됐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 들어온 직원 중에는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위험한 생각이다. PC에서 잘했다고 모바일에서 잘하리란 보장이 없다. 축구 동호회는 참여가 중요하지만 프로는 승패가 중요하다. IT 분야는 험악한 프로의 세상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었다."
―회사의 비전은.
"답하기 괴로운 질문이다. 콤플렉스 중 하나다. 다른 CEO들을 만나면 경영도 잘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는데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비전이라는 것을 잘못 가지면 고집이 된다. 내가 '이렇다'라고 말하고 나면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춰서 보려고 한다. 기업을 잘하려면 소비자를 잘 읽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흐름이 보인다. 그러려면 겸손해야 하고 많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 천재가 되는 것보다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적인 기업가가 있었기에 지금의 애플이 있지 않나.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천재로 생각할지 몰라도 내 생각은 다르다. 그들이 성공하기까지는 남보다 더 지독하게, 수없이 반복한 시도가 있었다. 선발주자가 있었지만 악착같이 쫓아갔고 사용자에게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이겼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식iN' 하나로 1등을 차지했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우리가 했던 100가지 시도 중 하나였을 뿐이다.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통했던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창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인터넷이란 엄청난 변화를 타고 창업했다. 모바일은 또 다른 큰 변혁이다. 지금 세대들은 이 흐름을 엄청난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어영부영하고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창업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것보다 확고한 자기 분야를 갖는 게 중요하다. 모바일 게임 '애니팡'을 만든 분들은 우리 회사 출신인데, 그들은 모두가 '캐주얼 게임은 돈이 안 된다'고 할 때도 그 분야만 파고든 사람들이다. 기회를 잡으려면 적어도 5~6년간 갈고 닦은 실력과 깊이가 있어야 한다."
―올해 공정위로부터 조사도 받았고 영세 사업자 영역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처음에는 서운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업이 성장하면 사회적인 책임도 더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생각보다 회사의 영향력이 더 크고 위상이 높았다. 비판받을 땐 아팠지만 지금은 그런 지적에 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다. 언론, 중소 상공인, 벤처와의 문제를 진심으로 잘 해결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네이버는 사이비 언론의 숙주’라는 말이 있다. 직접 그 사이트를 찾아서 보는 독자는 거의 없는 인터넷 매체가 네이버에 검색된다는 것을 무기로 삼아 악의적인 기사로 기업을 협박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포털의 뉴스 패러다임은 야후가 만든 것이다. 우리는 야후를 벤치마킹했다. 놀란 것은 이 힘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했던 회사의 모습은 아니다. 뉴스 콘텐츠에 대한 좋은 모델이 나와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 답을 아는데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부작용이 있어서 개선책을 내놓으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더라. 이를 해결하려고 할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다. 지금 엄청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언론을 하고 싶어하는 기업은 아니다. 좋은 IT 기업이 되고 싶다.”
―네이버의 창업자이자 리더다. 스스로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나는 지분이 적다. 이 회사는 지분으로 통제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다. 만약 이번에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나도 잘렸을지 모른다. 좋은 리더, 리더에 대한 존경심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봤다. 결국은 성공 사례에서 나오더라. ‘저 사람이 하자는 대로 했더니 잘 되더라’라는 것에서 존경심이 생긴다. 하지만 성공 사례도 영원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이 회사를 투명하게 이끌었다고 자부한다. 나는 이 회사 외의 관계사 지분이 한 주도 없다. 일가친척도 회사 근처에 단 한 명 없다. 네이버가 좋은 기업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려면 이제는 후배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후배들의 성장에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전산학과 석사를 마친 뒤 삼성SD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내벤처 ‘네이버포트’ 소사장으로 있다가 1999년 네이버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네이버는 초창기 야후, 다음 등에 뒤졌으나 차례로 꺾고 2005년부터 국내 검색 포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NHN)는 지난해 2조3893억원의 매출에 702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우량 기업이다. 중국의 ‘바이두’, 러시아의 ‘얀덱스’와 함께 구글·야후 등 미국 업체로부터 자국 검색시장 1위 자리를 방어하고 있는 세계에서 3개뿐인 검색 포털이기도 하다.
이 의장은 일찍부터 해외시장을 노렸다. 창업 이듬해인 2000년 일본 검색 시장에 진출했다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05년 철수했다. 하지만 2007년 재도전에 나서 4년 이상 고전하다가 2011년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메신저 ‘라인’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라인은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무료로 문자를 주고받고 음성·영상통화가 가능하며, 게임·만화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와 일본·대만·남미·스페인 등 세계 230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비스 시작 2년 6개월 만에 가입자가 3억명을 돌파했는데, 이는 페이스북(5년 8개월)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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