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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9 (11: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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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115134512§ion=05

중국의 '한글공정'? 흥분을 가라앉혀라!
[中國探究] 깊이 있는 상호 이해가 한ㆍ중 갈등 줄인다
기사입력 2010-11-15 오후 2:30:47

    
2007년 이후 한-중 관계는 공식적으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전략적 협력동반자'란 두 나라가 단순한 수교 관계 혹은 선린우호 관계를 넘어서서 정치, 안보, 경제,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말 그대로 '동반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 간의 관계로 하자면 그냥 아는 사이에서 친한 친구 사이가 됐고, 혹시 오해가 있더라도 사정을 알아보기 전에는 서로 다투지 말고 잘 지내자는 약속을 한 셈이다.

이런 관계의 격상은 두 나라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과 중국은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언제고 '싸움'이 일어날만한 민감한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다.

천안함 사건이나 6자회담 같은 정치·군사적인 문제들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이른바 짝퉁 상품에 대한 누리꾼들의 분노, 연예인의 실언으로 인한 대중의 반발 등 평범한 사람들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사안들도 때때로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이런 사안들은 양국 관계를 돌이켜볼 때, 어느 한 쪽의 치밀한 전략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불특정한 시점에 돌발적으로 제기되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른바 '한글 표준화' 문제가 민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0월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국어정보학회가 마련한 학술회의에 참석한 중국 측 현룡운 조선어정보학회 이사장의 발언이 계기가 됐다. 현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중국이 한글 휴대전화 자판 국제 표준을 추진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이 발언을 일부 언론이 받아쓰고,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트위터 활용에 능한 문인 이외수의 대응은 동요하는 누리꾼들에게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외수는 "중국이라는 도둑", "짱깨들", "짝퉁이나 만들어 쓰도록 해라", "이 참에 우리도 천안문, 삼국지, 만리장성, 홍콩 다 우리 거라고 한번 우겨볼까"는 등의 다소 감정적인 발언으로 중국을 비난했고, 이런 반응은 국내 최대 팔로워를 자랑하는 그의 트위터 네트워크를 타고 전파됐다. 우리 누리꾼들은 급기야 이 사안을 '동북공정'에 빗대어 '한글공정'이라고까지 명명하기에 이르렀고 이런 명명은 위키피디아 같은 백과사전에까지 등재되면서 고착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다행히 이런 상황은 후속 보도가 이어지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다. 중국이 여러 차례 우리 측에 표준 제정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원희룡 의원도 이 사안이 자칫 반중 정서의 확산으로 이어질까 진화에 나선 데다 한국어정보학회에서도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보인다.

한국의 이런 상황들은 즉각 중국 매체들에도 전달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누리꾼들의 움직임 또한 소상히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10월 20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해외판은 관련 사건을 의식한 듯, 1977년부터 국무원의 결정에 따라 진행돼 온 조선어 관리 업무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더불어 '조선어' 정보 처리의 표준 제정을 위해 한국, 북한, 중국 세 나라가 함께 연구를 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와서 새삼 '한글 표준화' 문제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행히도 그 동안 진척이 없었던 이 문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내부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다뤄지기 시작했고, 우리가 주도하는 국제 표준을 만들어내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어 반가울 따름이다.

문제는 언제고 다시 이런 문제들, 즉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잠복해 있는 유사한 사안들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는 데 있다. 2007년 창춘(長春) 겨울 아시안게임 여자 쇼트트랙 시상식장에서 우리 선수들이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퍼포먼스를 펼친 사건이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사전 보도 사건 등과 같이 일회적인 사안들뿐 아니라, '동북공정'이나 단오절과 같은 문화기원에 대한 논쟁, '혐한류' 등과 같이 지속적인 사안들도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이좋은 친구라 하더라도 갈등의 소지는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사적인 관계와 달리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국가 간 갈등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곳곳에 잠복해 있는 갈등 요인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허둥댈 수는 없는 일이다. 명문화 된 '갈등 관리 매뉴얼'을 만들 수는 없다 해도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은 거대한 중국에 대한 모종의 '공포'를 가지고 있다. 최근 중국의 부상은 한국인들에게는 무시 못할 심리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심리적 영향은 역사적 경험에 의해 집단적으로 내면화된 것이다.


▲ 중국의 민족출판사와 대백과전서출판사가 함께 펴낸 조선족 어린이를 위한 '백과전서'.  
그런 점에서 중국은 한국인들의 심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글이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문자로 채택될 때는 열광하다가 중국의 문자가 되려고 한다는 보도에 한국인들이 들끓는 데는 그만한 역사적 경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국'으로서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중국의 태도를 보면서 한국인들은 집단적 경험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아시아 역내 균형 있는 자세를 지켜가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 역시 중국의 입장을 십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중 갈등의 소지는 북한이나 경계에 위치한 조선족 문제로부터 기인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입장에서 조선족 관련 사안은 '민족'의 문제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자국 국민을 위한 다양한 국가적 활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같은 단일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룬 경우와는 다른 양상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 '한글 표준화' 사건에서 중국 측은 단 한번도 '한글 공정'이라는 표현을 꺼낸 바 없고, 또 한글이 "중국만의 것"이라 주장한 적도 없다. 관련 사안을 다룰 때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의 신중한 대응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만이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폐쇄적인 민족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국가는 민족을 자기 안에 붙잡아두려고 하지만, 민족은 그 자체로 유동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마찬가지다.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유동하는 그 실체들의 '트랜스-내셔널'한 움직임을 기정사실화하고 그에 대한 사고의 깊이를 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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